1. 서사 변형
마지막으로 소설에서 뮤지컬로 각색하며 변형이 두드러진 부분들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앞서 확대된 부분이나 축소된 부분도 변형이 일어난 것이지만 여기서는 확대나 축소보다는 서사가 변화한 부분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2. 소설과 뮤지컬 장르간 서사 변형 - a. 작가 사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작가의 사설이다. 레미제라블은 소설이면서 그 시대의 역사서라고 할 정도로 그 당시에 대한 묘사와 그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서술해 놓은 부분이 많다. 당시 사람들의 비참하고 가난한 삶, 하수도, 수녀원, 곁말, 워털루 전투 등으로 소설의 전체적인 서사와는 상관없어 보이기도 한다.
2-1. 소설에서
2권의 12쪽에서 91쪽까지는 1815년에 있었던 워털루 전투에 대한 내용으로 거의 80쪽에 달하는 내용을 줄줄이 서술한 다음에야 퐁메르시 대령과 테나르디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229쪽에서 348쪽은 프티 픽퓌스 수녀원에 관한 이야기, 439쪽부터 371쪽까지는 제목부터 ‘여담(餘談)’으로 수도원에 관한 작가의 이야기들이다. 수도원에 대한 이야기가 다 끝난 후에야 장발장이 수녀원에 어떻게 들어가게 되었는지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다. 4권의 7장인 273쪽에서 315쪽까지는 ‘곁말’에 대한 이야기뿐이고, 5권의 2장인 150쪽에서 181쪽까지는 하수도에 관련한 이야기들이다. 이 외에도 소설 곳곳에는 당시 시대, 사회, 역사에 관한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이 같은 내용들은 굳이 없어도 독자들이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다만 이런 내용을 통해서 독자는 당시 시대 배경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2-2. 뮤지컬에서
뮤지컬에서는 이런 사설은 대부분 생략되거나 무대의상, 배경, 연기, 노래, 소품 등으로 대체되었다. 뮤지컬과 소설의 서사 담화의 큰 차이가 여기서 나타난다. 소설은 서술자가 독자에게 이야기를 해주지만 뮤지컬은 의상, 배경, 연기, 노래, 소품 등으로 보여준다. 서술자가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독자가 텍스트를 통해 상상해야 했던 것들을 눈으로 직접 보여주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아래는 At The End Of The Day의 일부분이다.
합창해는 떨어져 또 하루 또 우린 늙어
우리 가난한 팔자가 다 그렇지
하루하루 전쟁터
어느 사람도 예외는 없어
내일 와도 뻔하지
뭐에다 써?
하루 또 날아갔지
해는 떨어져 또 하루 또 부는 바람
얇은 셔츠로 추위를 견뎌야 해
갈 길 바쁜 행인들
우리 따위 보일 리 없지
겨울 추위는 서둘러 와
얼어 죽네
사는 게 바로 죽음
해는 떨어져 또 하루 또 다른 새벽
숨은 태양은 멀리서 떠오르나
사납게 치는 파도
소리 없이 다가오는 태풍
어딜 가나 막힌 길
어딜 가나 막힌 길
여기 어디도 내 길은 없다.
난 어디로 가야 하나
우린 어디로 가야 하나
해가 떨어지면!
이 부분은 At The End Of the Day의 앞부분에 나오는 이 내용은 당시의 비참한 삶처럼 급한 박자에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불평하는 듯한 말투와 대사로 불린다. 이를 통해 관객은 당시 시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서사 전체적으로는 혁명의 발단, 분위기 등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3. 소설과 뮤지컬 간 서사 변형 - b. 테나르디에 부부 Master Of The House
3-1. 소설에서
소설과 뮤지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소설은 서술하지만 뮤지컬은 보여준다는 것이다. 소설은 테나르디에 부부에 대해 그들이 어떤 인물인지 서술자가 직접 서술하는 장면이 많다.
키가 크고, 금발이고, 얼굴이 불그레하고, 뚱뚱하고, 살찌고, 얼굴이 네모지고, 덩치가 크고, 동작이 날쌘 이 테나르디에의 아내를 독자는 아마 그녀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기억하고 있었으리라.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녀는 장바닥을 거느리고 다니는 저 절구통 같은 시골뜨기 족속에 속했다. 침대, 방, 빨래, 부엌일, 비가 오건 볕이 나간 무엇이고다... 그녀는 욕설을 기가 막히게 잘했고, 호두를 주먹으로 단번에 깨트린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남편 테나르디에는 키가 작고, 수척하고, 창백하고, 광대뼈가 불거지고, 앙상하고, 빼빼 마르고, 병약해 보였으나 실은 굉장히 튼튼한 사나이였는데, 그의 협잡은 맨 먼저 그러한 체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언제나 조심성 있게 웃음을 띠고 있었고, 누구에게나 공손했다. 거지에게조차 단 한 푼도 안 주면서 공손했다. 눈초리는 족제비 같았고 얼굴은 문인 같았다. 그는 사기꾼 철학자였다. 그는 능변가였다. 테나르디에는 엉큼하고, 욕심쟁이고, 게으르고, 영리하였다. 테나르디에는 무엇보다 교활하고 안정적인 사나이로, 온건한 종류의 악당이었다. 이런 족속이 가장 악질이다. 위선이 거기에 섞여 있으니까.
이 외에도 테나르디에와 그 아내를 묘사하는 내용이 뒤에 계속된다. 서술자에 의해 직접 욕심쟁이고 사기꾼이며 게으르고 악질인 인물로 규정된 것이다. 여기서 서술자는 삼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에 있으므로 독자는 별다른 의심 없이 서술자의 서술을 그대로 받아들여 인물을 머릿속에 만들어 낸다. 그러나 뮤지컬에서는 다르다.
3-2. 뮤지컬에서
떼 나르기에 술고래들, 주정뱅이 놈들
엉큼한 놈, 천박한 것들
불량품들, 모두가 내 손님
불나방들 불빛에
홀린 듯 내게
돈만 내면 대환영
.....
이 집 주인장
인상도 좋아
누구든지 두 팔 벌려 대환영
틈만 보이면
놓치지 않고
스리슬쩍 벗겨 먹는 초능력
친절은 항상 무한 리필
재룟값이 안 드니까
때론 고맙단 인사
주시면야 감사하게 받죠
이 집 주인장
벗겨 먹기 짱
한두푼도 아낌없이 싹 챙겨
술에 물을 타고
물에 술 타고
모자랄 때 유기농
천연 맛 술
…
합창 이 집 주인장
눈치코치 짱
누구 하나 빠짐없이 챙기죠
돈이 없어도
돈이 많아도
인생길, 함께 갈만한 친구죠
여러분의 재간둥이
여러분의 해결사
뮤지컬에는 테나르디에와 테나르디에 부부로 등장한 배우가 직접 등장한다. 뚱뚱하고 얼굴이 네모난 여배우가, 마르고 수척한 남배우가 등장해 능청스럽게 그들을 연기하는 것이다. 독자들이 직접 생각하고 채워 넣어야 하는 빈틈을 배우들이 채워준다. 장님이 등장하자 ‘오, 봉이다!’라고 외치고 손님에게 가방을 잘 챙기라며 자기가 챙긴다. 술에 물을 타고, 술 대신 오줌을 내놓고, 거울을 봤다고 추가 요금을 받는다. 손님들에게 공손히 인사하면서 뒤로는 그들의 물건을 훔치고, 바가지를 씌우고, 사기를 친다. 이 모든 것이 배우들의 대사와 행동, 노래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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