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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드러나는 장발장 서사 차이

by Glad soomy 2023. 3. 23.

1. 서사 축소 - b. 장발장

 장발장 또한 소설에 비해 뮤지컬 속에서 서사가 많이 생략되어 있지만 스토리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고 그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따로 떼어서 설명하려 한다. 소설 속에서 장발장은 장발장-마들렌-포슐르방으로 이름을 바꾸고 생활한다. 수녀원에서 나온 후 이름을 다시 장발장으로 바꾸어 생활 했는 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거의 자기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은 듯 생활한 모습으로 보아 포슐르방으로 이름을 바꾼 이후의 모습의 연장선 상에서 보아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2. 레미제라블 소설 속에서 드러나는 장발장  서사

 장발장의 이름이 바뀌는 것에는 신분과 자신을 숨기는 의미만 있지 않다. 그는 이름이 바뀔 때마다 달라진다. 첫 번째로 장발장일 때 그는 범죄자였다. 굶주린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치다 교도소에 갔고, 수감생활 중 몇 번의 탈옥 때문에 19년의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감옥에서 그는 자기를 심판대에 올리고 심판하며 자기가 부당하게 벌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자기만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의 잘못이며, 나아가 신에게 까지 그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소설의 표현대로 그는 사회에 유죄를 선고하고 자기의 증오심으로 사회를 처벌하고자 하였다. 이런 그의 행위의 원동력은 상습적인 분노, 마음의 고통, 자기가 당한 불공평에 대한 뿌리 깊은 감정, 반발이었다. 한 마디로 그는 사회와 신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미리엘 주교의 용서를 받은 이후 그는 어떻게 변했는가. 장발장이 주교의 은식기와 은촛대를 훔치지만 주교는 오히려 자신이 선물로 준 것이라며 장발장을 감싸준다. 주교의 용서를 받은 뒤 장발장은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그러던 중 프티제르베라는 소년이 떨어트린 40수를 무의식적으로 빼앗고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레미제라블 장발장 은식기

레미제라블 도서 (1권 200~206쪽)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꺼림칙한 마음의 무게로 갑자기 그를 짓누르는 것처럼 그는 갑자기 오금이 휘어들었다. 그는 기진맥진하여 커다란 돌 위에 쓰러졌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털을 움켜잡고 얼굴을 무릎 사이에 틀어박고는 부르짖었다.
“나는 불쌍한 놈이다!”
그러자 그는 가슴이 터질 듯해서 울기 시작했다. 십구년 이래 그가 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 중략…..
장발장은 오래오래 울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흐느끼며 울었다. 여자보다도 더 연약하게, 어린아이보다도 겁내며.
 우는 동안 그의 뇌리에는 더 많은 빛이 스며들었다. 이상한 빛이, 즐겁고도 무서운 빛이. 그의 지난날의 삶, 최초의 잘못, 오랜 속죄, 외부의 금수화, 내부의 냉혹, 그토록 수많은 복수 계획을 품고 기뻐했던 석방, 주교의 집에서 그에게 일어났던 일, 그가 마지막으로 한 일, 어린아이한테서 40수를 훔친 일, 주교의 용서 후에 있었던 만큼 더욱더 비겁하고 더욱더 영악한 그 범죄, 이러한 모든 것이 또렷하게, 여태껏 본 적 없을 만큼 선명하게 그의 머릿속에 되살아났다. 그는 자신의 생애를 바라보았는데, 그것은 끔찍스러워 보였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바라보았는데, 그것은 무시무시해 보였다. 그렇지만 다사로운 햇빛이 그 생애와 영혼 위에 비치고 있었다. 그는 천국의 빛으로 사탄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해 12월 장발장은 마들렌이라는 이름으로 몽트뢰쉬르메르에 나타난다. 흑구슬 제조법을 개량해 공장을 세우고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준다. 어느 날은 포슐르방이라는 늙은이가 마차에 깔렸을 때 마차를 들어 올려 그를 구해준다. 당시 마들렌 시장이라는 말은 디뉴에서 주교 예하-장발장을 용서한 주교-라는 말과 똑같은 어조로 불리었다고 할 정도로 장발장은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다. 몇 번이나 시장이 되기를 거절하지만 1820년 결국 시장이 된다.
 죄인이었던 장발장과 시장 마들렌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기부하고 적선하며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한다. 사람들은 그를 ‘붙임성 없는 호인’이라고 부른다. 주교에게 용서받은 후 그가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지는 샹마티외라는 사람이 자기를 대신해 누명을 쓰고 잡혔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자백할 것인가, 말 것인가 갈등하는 장면에서 잘 나타난다.
 장발장이 새로운 삶을 살기를 결정하며 정했던 두 가지 원칙이 있었다. 이름을 감출 것과 자기의 삶을 성화할 것이었다. 이름을 감춘 것은 죄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고, 자기의 삶을 성화하는 것은 자기 죄에 대한 속죄의 의미였다. 자백했다간 다시 죄인 취급을 받으며 감옥에 갇힐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갈등했고, 그다음에는 자기가 자백을 하면 자기만 믿고 있는 몽트레쉬유메르는 무너지고 말 것이기 때문에 갈등했다. 또한 오랜 고난 속에 얻은 이 행복, 명예, 존경이 모두 사라지고 채찍질 당하며 비참함을 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샹 마티외를 외면하게 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자기 죄를 회개한 이후 자기 인생의 목적이 육신의 구원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임을 생각하게 된다.
 코제트를 만난 후에는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흐릿해져 가던 주교의 용서를 다시 되새기고, 일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까지 느끼게 된다.

 그것은 그가 만난 두 번째 흰빛의 출현이었다. 미리엘 주교는 그의 마음의 지평선에 미덕의 여명을 떠오르게 해 주었고, 코제트는 사랑의 여명을 떠오르게 해 주었다.

레미제라블 장발장과 미리엘 주교


 몇 가지 사건 후 코제트와 함께 수도원에 들어가게 된 장발장은ㅡ이름을 포슐르방으로 바꾼다. 그 수녀원에서 온 몸을 던져 기도하는 수녀를 보고 더 깊은 충격에 부딪힌다. 자기 자신은 내던진 속죄,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장발장이 보기에 수녀원은 감옥과 비슷했다. 들어갈 수는 있지만 외부로부터 완벽히 차단되어 있었고 항상 죄에 대한 속죄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둘은 서로 달랐다. 한쪽은 자기의 죄에 대한 속죄를, 다른 쪽은 다른 사람에 대한 속죄였다. 미리엘 주교의 용서 이후 마들렌 시장으로써의 삶은 자기의 죄에 대한 속죄였다. 이웃에 대한 선행, 덕행들은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에 대해 속죄하고 영혼을 성화시키기 위한 것들이었다.
 장발장은 다른 사람에 대한 선행과 자기 죄에 대한 속죄의 삶을 살았지만 명예, 부, 존경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던 마들렌에서 코제트와의 만남과 수녀원에서의 생활로 그는 완전히 자기를 내려놓은 포슐르방으로 다시 한번 변용하게 된다. 이후 그의 삶에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은 코제트를 위한 것이고 때때로 다른 사람을 위해 적선을 할 뿐이었다. 주교에게 은식기와 은촛대가 유일한 사치였듯이 장발장에겐 코제트가 유일한 행복으로, 그 외의 것은 그에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후 그는 코제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유일한 행복마저 내려놓고 죽음을 맞는다.

 

3. 뮤지컬에서 서사가 축소된 장발장

 뮤지컬에서 장발장은 주교의 용서 후 한 번의 변용을 맞는다. 이후 마들렌에서 포슐르방으로 이름이 바뀌며 일어난 자세한 내면의 변화나, 속죄에 대한 태도 등은 나타나지 않는다. Valjean’s Soliloquy와 샹 마티외 사건을 담은 솔로곡은 있지만 전체적인 서사에서 수녀원에 들어가는 내용이 삭제되었기 때문에 마들렌으로써 장발장과 포슐르방으로써의 장발장이 어떻게 다른지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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