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레미제라블 혁명에 관한 서사 변형
1-1. 뮤지컬 넘버 - c. bring him home
제게 아들 주셨다면
여기 청년 같은 아들
여름 지나, 세월은
화살처럼 흘러가
나도 늙어 사라진다
평화로
환희로
살아갈
아직 어린 청년
주시고
빼앗나
그를 좀 놔줘요
나 죽어, 날 죽여
청년은
집으로
Bring Him Home은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잠든 젊은이들 사이에서 장발장이 홀로 부르는 노래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로 그는 아직 젊으니 그를 축복하여 집으로 안전히 보내달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마리우스를 포함한 혁명에 참여한 젊은이들을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으나 ‘그들’인 복수형이 아니라 단수형이고 후에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구하는 내용으로 미루어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라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이 앞에서 장발장은 마리우스가 코제트에게 쓴 편지를 대신 받는다. 편지를 읽어보던 장발장은 ‘그대 날 사랑하는 만큼 죽음은 잔인해요.’라는 내용을 읽게 된다. 마리우스가 코제트를 사랑할 뿐 아니라 코제트도 마리우스를 사랑한다는 내용이 이 한 줄 안에 들어가 있다. 코제트의 마음을 알게 된 장발장은 떠나는 것을 포기하고 마리우스를 구하러 온 것이다.
차라리 내가 죽어야 한다면 죽겠으니, 젊지만 겁먹어 지친 청춘을 집으로 보내달라는 장발장의 기도는 십자가를 지는 예수의 모습과 같이 숭고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처음 주교의 용서를 받고도 습관적으로 프티제르베의 40수를 빼앗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혁명의 현장에서 자기의 죽음을 각오하고, 젊은이를 살리려는 모습은 관객에게 감동을 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소설 속에서도 장발장이 바리케이드를 찾아온 것은 처음부터 코제트를 위해 마리우스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어쩌다 보니 마리우스가 위험에 처하고, 그런 그를 다른 부상자들과 같이 구한 것이 아니었다. 바리케이드를 찾아오기 전 장발장은 코제트와 함께 파리를 떠날 계획이었다. 그러나 코제트가 마리우스에게 쓴 편지를 발견하고 그는 깊은 충격을 받았다. 장발장은 ‘코제트를 사랑하고’, ‘이 소녀를 빛으로, 주택으로, 가정으로, 조국으로, 천국으로 삼고’ 있었다. 어느 날 장발장의 삶에 나타난 코제트는 유일한 사랑이었고, 유일한 사치이며 유일한 행복이었다. 자기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으면서 코제트의 행복을 위해서는 기꺼이 모든 것을 베풀어주었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딴 사내를 향하고 있다. 그녀의 평생소원은 딴 사내에게 있다. 사랑하는 이는 따로 있고, 나는 아버지일 뿐이다.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느꼈을 때 “그녀는 내 밖으로 떠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 그가 자기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한 이후 코제트는 그가 가진 유일한 사랑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코제트에게 보낸 마리우스의 편지를 중간에서 가로챈 장발장은 마리우스가 바리케이드에 갔으며 그렇다면 죽을지도 모르며, 이미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해방감을 느끼고 다시 코제트와 단둘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일이 돼 가는 대로 내버려 두기만 하면 된다. 그 사나이는 빠져나오지 못하나. 아직은 죽지 않았더라도 곧 죽을 건 틀림없다.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마리우스가 죽을지도 모르는 일에 대해 장발장은 ‘다행인 일’이라고 말했다. 샹마티외 사건 때와 같다. 이대로 두자. 그때도 장발장은 그가 나 대신 감옥에 가면 나는 영원한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때와 같이 긴 갈등은 없었다. 그때는 밤새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양심을 회피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이 모든 생각을 하고 나서 곧 침울해졌다. 그러곤 바로 바리케이드로 향한다. 수녀원에서 자기 죄에 대한 속죄가 아닌 남을 위한 속죄를 깨달았던 것처럼 이전에는 자기 영혼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이번에는 다른 사람, 즉 코제트를 위한 선택을 한 것이다.
1-2. 레미제라블 소설에서 혁명에 대한 서사
그러나 소설 속에서 장발장은 이와 같은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물론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러한 마음이 직접적으로 표현된 부분도 없다. 다만 장발장은 바리케이드에 등장한 이후 정찰병들을 쫓아냈고, 바리케이드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매트를 끌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들과 자베르를 구한 일 빼고 장발장은 바리케이드 안에서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콩브페르는 그에 대해 앙졸라에게 “희한한 기인이야.”, “이 바리케이드 안에서 용케 싸우지 않고 있거든.”이라고 말했고, 앙졸라는 “그렇다고 바리케이드를 지키지 않는 것도 아냐.”하고 대답했다. 아래 인용한 본문에서처럼 장발장은 바리케이드 안에서 혁명을 위해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무런 공격도 방어도 하지 않고 부상자들을 구하고 바리케이드를 고치다가 마리우스가 위험에 처하자 빠르게 그를 구했을 뿐이다.
장발장은 전투에서 자기의 몸을 위태롭게 하는 것밖에는 거기에서 다른 관계가 없었다. 그가 없었다면, 그 단말마의 최후 판국에서 아무도 부상자들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구세주처럼 살육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고 나타난 이 사람 덕분에, 쓰러지는 사람들은 일으켜져서 아래층 홀에 운반되어 치료받았다. 그사이에 그는 때때로 바리케이드를 고쳤다. 그러나 사격이나 공격 또는 심지어 자신의 방어와 비슷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그의 손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는 말도 하지 않고 구조하고 있었다.
소설에서는 장발장이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편지를 보고 갈등하다가 마리우스를 구하러 갔지만 뮤지컬에서는 이런 갈등은 생략되고 바로 혁명에 참여한 마리우스를 구하러 간다. 바리케이드 안에서도 소설에서 장발장은 조용히 있었지만, 뮤지컬에서는 마리우스를 구하려는 마음을 간절히 노래하고 있다.
2. 결론
그렇다면 뮤지컬에서는 왜 이렇게 장발장이 직접적으로 노래를 불렀던 것일까? 뮤지컬의 서사는 전체적으로 소설에 비해서 더 혁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서사를 지탱하는 두 기둥은 장발장과 혁명인데, 한쪽에서 장발장의 서사가 진행되면서 함께 프랑스 혁명도 차근차근 진행되어 오고 있었다. 마리우스는 처음 등장할 때도 ABC의 벗들과 함께 혁명을 준비하는 인물로 나타났으며, 코제트와 혁명 사이에서 갈등할 때도 스스로 혁명을 선택한다. 이런 가운데 장발장의 Bring Him Home은 장발장의 서사와 혁명의 서사가 함께 어우러지게 하고 혁명에 참여한 젊은이들에 대한 안타까움, 비참함 등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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