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소설 (거리-가브로슈-테나르디에) / 뮤지컬 (거리-가브로슈) 인물관계 변화
1.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가브로슈, 테나르디에, 거리의 관계
소설에서 가브로슈는 테나르디에, 거리와 관계를 맺고 있다. 이와 달리 뮤지컬에서는 가브로슈와 테나르디에의 관계는 사라지고 가브로슈와 거리의 관계만 남는다. 두 장르에서 인물의 관계 자체는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거리와 가브로슈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은 두 장르에서 공통으로 찾아볼 수 있다. 즉, 가브로슈는 소설과 뮤지컬에서 공통으로 ‘거리의 아이’, ‘방랑자’라는 캐릭터를 지니는 인물이다.
‘가브로슈의 거리’는 당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자 그 사람들의 생활 본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독자와 관객은 가브로슈를 통해 ‘가브로슈의 거리’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비참함과 도덕성의 타락)을 엿볼 수 있다. 소설은 이에 더 나아가 ‘빈곤함 속에서 교육받지 못하고 자라나는 아이’라는 캐릭터를 가브로슈에게 입힌다. 이는 거리에서 살아가는 가브로슈가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한 채 하는 도둑질과 같은 행동, 끊임없이 사용하는 은어들을 통해 드러난다.
먼저, 소설에서의 가브로슈는 이렇게 묘사되어있다.
< 수선스럽고, 얼굴이 파리하고, 날쌔고, 예민하고, 장난꾸러기였으며, 간다 갔다 하고 조금 훔치고 인하면서도 병약해 보였다. 그는 집도 없고 빵도 없고 불도 없고 사랑도 없었지만 자유로웠기 때문에 유쾌했다. >
날쌔고, 장난꾸러기이며, 집도 없고 빵도 없고 불도 없는 가브로슈의 기본적 이미지는 뮤지컬과 같다. 그렇지만 사랑도 없는 가브로슈는 뮤지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소설에서의 특징이다. 이점은 소설에서만 언급되는 가브로슈와 테나르디에의 관계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소설에서의 가브로슈는 테나르디에 부부의 첫째아들이다. 즉, 코제트가 어릴 적 맡겨졌던 여관집의 셋째이자 첫째아들이며 에포닌의 남동생이다. 이런 가브로슈의 가족관계가 소설에서 여과 없이 드러남은 가브로슈라는 캐릭터 설정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가브로슈가 속한 ‘가족’이라는 집단은 보통의 가족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는 그들의 이질적인 가족관계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였다.
< 아버지는 그를 생각하지 않았고, 어머니는 그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의 양친은 그를 발길로 걷어차 인생 속에 던져 버렸다. >
< 테나르디에의 아내는 딸들에게까지밖에는 어머니가 아니었다. 그녀의 모성애는 거기서 그쳤다. 인류에 대한 그녀의 증오는 제 아들들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녀의 아들들에 관해서 그녀의 악의는 극심했고, 그녀의 마음은 그 점에서 불길한 절벽을 이루었다. 독자도 보았듯이, 그녀는 맏아들을 미워했고, 다른 두 아들은 몹시 싫어했다. 왜? 그저 밉고 싫었기 때문에. 가장 무서운 동기이고 가장 확실한 대답은 그저 밉고 싫었기 때문이라는 것. “귀찮아 못 배기게 삐삐거리는 아이들은 난 필요 없어.” 하고 이 어머니는 말했다. >
가브로슈의 가족들은 가브로슈를 사랑하지 않았다. 가브로슈가 집을 나가 거리를 헤맬 때 그 어떤 가족도 그의 부재를 걱정하거나 집에 정착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가브로슈의 부재를 당연한 듯 받아들였다.
가브로슈는 가족이 있고 부모가 가브로슈를 아들로, 가브로슈가 테나르디에 부부를 부모로 생각한다. 또한 그들은 서로 멀지 않은 곳에 살며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가브로슈는 ‘가족’이라는 집단에 대해 가족으로서 느낄 수 있는 긴밀한 유대관계를 느끼지 못한다. 가족들 또한 가브로슈에게 애정과 사랑을 주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런 점은 가브로슈가 거리로 나가는 이유가 되며 가브로슈의 비도덕적 행동에 이유가 되기도 한다.
즉, 소설에서의 가브로슈와 테나르디에의 관계는 가브로슈가 거리와 관계를 맺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해주는 장치이자 거리의 비참함을 극대화하는 요소이다.
2.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가브로슈, 테나르디에, 거리의 관계
뮤지컬에서 가브로슈에게는 거리와의 관계만 존재한다. 가브로슈와 테나르디에의 관계가 사라짐에 비교적 ‘가브로슈 - 거리’ 관계가 긴밀해진다. 이에 가브로슈는 거리를 통해 앞서 언급한 역할 이외의 역할을 얻는다. 앞서 언급한 거리는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거리라는 곳은 모든 사건이 일어나는 곳인 동시에 그런 사건들이 입과 귀를 통해 빠르게 전달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거리의 특성을 뮤지컬에서는 가브로슈를 통해 활용하고 있다.
뮤지컬은 장르의 특성상 시간적 제약을 받는다. 이는 시간적 제약이 없는 소설에 비해 담을 수 있는 내용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내용에 적절한 연결과 흐름을 위해 많은 내용을 삭제할 수는 없다. 이에 레미제라블에서는 가브로슈를 그 역할로 이용한 것이다. 뮤지컬에서 가브로슈는 새로운 장면에서 관객에게 극의 상황을 설명해준다. 즉, 가브로슈의 주 활동무대인 거리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가브로슈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뮤지컬 장르의 특징인 시간적 제약에 의해 뮤지컬에서 담지 못한 세세한 설정이나 사건 등을 가브로슈의 입을 통해 관객들에게 간략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뮤지컬의 제2막을 여는 인물은 다름 아닌 가브로슈다.
가브로쉬 안녕하슈, 나는 가브로쉬
여긴 내 구역, 내가 왕!
볼거리 하나 없지만
빵가루 하나 없지만
여긴 학교, 나의 사교클럽
바로 여기 뒷골목에
이 집 저 집 구걸해 살지요
배고파도 상관없어
가난해?
외로워?
따라와, 날 따라와!
2막 시작에서 무대는 구걸하는 사람들, 혁명을 홍보하는 젊은이들, 비참한 삶을 연명해가는 이들을 보여준다. 관객들은 위의 가브로슈의 대사를 통해 그곳이 뒷골목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또한 가브로슈는 테나르디에 부부에 그간의 행적과 현재 상황을 간결하게 관객들에게 전한다. 가브로슈는 테나르디에의 그간 식당에서의 사기 행적들을 되짚어주며 현재 그들이 강도 패거리라는 것을 전달하며 그들의 딸, 에포닌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가브로쉬 경계경보, 떼나르디에!
사기꾼 가족 총출동
싸구려 식당 열어서
손님들 등쳐먹었죠
이젠 강도, 막가는 패거리
심지어 딸도 나서지
에포닌은 겁나게 빠삭해
얕보다간, 된통 당해
쫄았냐? 난 아냐!
뭔 상관, 내가 짱!
이렇듯 가브로슈는 거리와의 관계를 통해 그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된다. 그로써 구걸과 강도질 등 거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가브로슈의 입을 통해 관객들에게 다시 한번 전달된다. 이로써 관객들은 거리라는 공간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번 주목하게 되고 그로 인해 그곳의 비참함과 가난을 느낀다.
또한 혁명에 불을 붙이게 되는 라마르크의 서거도 가브로슈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가브로쉬 내 말 좀 들어봐!
라마르크가 죽었어!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가브로슈는 거리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에 소설과 뮤지컬은 모두 가브로슈와 거리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소설과 뮤지컬 각 장르에서 ‘거리’가 내포하는 의미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소설에서는 가브로슈를 테나르디에 부부, 즉, 가족과의 관계를 연결함으로써 가브로슈가 거리로 나가는 비극적인 상황을 통해 당시의 비참한 시대 상황을 보여준다. 또한 가브로슈의 비도덕적 행동과 은어를 통해 교육받지 못한 모습과 며칠 굶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는 모습을 통해 거리의 배고픔 추움 이런 걸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뮤지컬에서는 테나르디에와의 관계를 삭제해 가브로슈를 유쾌한 아이로 캐릭터화하여 거리의 비참함을 보여주긴 하지만 비교적 덜 부각하고 관객들이 극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에 무거움을 크게 느끼지 않도록 하였다. 또한 거리의 사건들을 전달하는 캐릭터로 관객들에게 극의 흐름을 간략하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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